국제사법재판소 재판절차

I. 제소

ICJ에 대한 사건의 소제기는 양 분쟁 당사국이 제소를 합의하는 특별 협정 (compromis)을 통고하거나, 일방 당사국의 제소에 의한다. 이 때 분쟁의 주제와 당사국이 표시되어야 한다. ICJ 행정처장은 즉시 그 신청을 모든 이해 관계자에게 통보하고, UN 사무총장을 통하여 모든 UN 회원국에게도 통고한다 (제40조). 특별협정에 의한 사건 회부에는 원, 피고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건의 당사국도 “A/B”의 형식 으로 표기된다. 그러나 일방적 제소의 경우 원, 피고의 개념이 적용된다. 사건 당사 국은 “제소국 v. 피소국”의 형식으로 표기된다.

II. 선결적 항변

일방적 제소가 있는 경우 피소국이 사건 본안에 대한 ICJ의 심리와 판결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재판소의 관할권이나 사건의 부탁 가능성 (admissibility)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선결적 항변 (preliminary objection)이라고 한다. 이는 제소국의 준비서면이 제출된 후 3개월 이내에 제기되어야 한다 (ICJ 규칙 제79조). 선결적 항변이 제기되면 본안 절차는 정지되고, ICJ는 이를 우선적으로 판단함이 원칙이다. 단 선결적 항변의 내용이 본안과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본안과 함께 판단하기도 한다. 선결적 항변이 받아들여지면 소송절차는 그것으로 종료된다. 이 결정이 판결로 내려지면 이는 일반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선결적 항변이 제기되는 유형은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ICJ의 관할권 성립의 근거를 부정하는 주장. 예를 들어 원고가 관할권 성립의 근거로 제시한 조약이 이미 실효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관할권 성립의 근거 자체는 부인하지 않으나, 현재의 분쟁이 그에 속하는 분쟁이 아니라는 주장. 예를 들어 2000년 이후 발생한 분쟁에 대하여 ICJ의 관할권을 수락하고 있는데, 제기된 분쟁은 그 이전에 발생한 분쟁이라는 주장. 이러한 주장은 사건 본안과 분리하여 판단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셋째, 관할권 성립의 근거도 인정하고, 사건도 그에 속하는 것임을 인정하나, 다른 국제법 원칙에 근거하여 재판 진행에 반대하는 주장. 예를 들어 국내적 구제절차가 종료되지 않았다는 주장.

ICJ에 사건이 일방적으로 제소된 경우, 특히 최근 피소국은 관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선결적 항변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국제재판소는 되도록 자신의 관할권이 성립되었다고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ICJ가 선결적 항변을 수락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분쟁 당사국이 선결적 항변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ICJ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관할권 없음을 결정할 수도 있다.

III. 재판의 진행

재판은 크게 서면제출절차와 구두변론절차로 구분된다. 서면제출은 대개 준비서면 (memorial)과 답변서 (counter memorial), 그리고 항변서 (reply)와 재항변서 (rejoinder)의 형식으로 양측이 2회씩 제출한다. 재판부가 그 제출기한을 정하여 준다. 모든 서류는 영어 또는 불어로 작성되어야 하며, 제3국어 작성본은 번역을 첨부하여야 한다. 통상 서면절차가 종료되고 수개월 후에 구두변론절차가 개시된다. 구두절차의 개시 이후에는 타방 당사국의 동의나 재판소의 허가 없이는 서면제출이 불가하다. 재판은 일반인에게도 공개된다.

ICJ의 관할권이 성립된다면 일방 당사국이 불참하더라도 소송은 진행된다. 즉, 일방이 출석을 거부하더라도 재판의 진행은 중단되지 않으며, 타방 당사국의 자동 적 승소를 결과하지도 않는다. 불참 역시 당사국의 계산된 정책결정의 소산이다. 불참국은 ICJ의 소송절차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 뿐 여러 경로로 제기된 쟁점에 대한 자국측 입장을 공표하는 것이 보통이다. 재판소는 이러한 주장까지 수집하여 검토 하며, 나름대로의 자료와 증거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린다.

IV. 잠정조치

청구취지의 대상인 권리가 급박하고도 회복 불가능한 위험상태에 놓여 있어 당사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종국판결 이전에도 재판소가 잠정조치 (provisional measure)를 취할 수 있다 (제41조). 잠정조치는 재판의 어느 단계에서도 신청할 수 있으며, 이의 신청이 있으면 재판소는 이를 우선적 으로 처리한다. 잠정조치가 내려지면 이는 안보리로 통보된다. 성격상 잠정조치는 원고국이 신청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나, 피고국도 신청할 수 있으며, 당사국의 신청 없이 재판소 스스로가 잠정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규칙 제75조 1항). ICJ는 과거에 비하여 점차 잠정조치의 부여 요건을 완화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잠정조치가 법적 구속력을 갖느냐는 PCIJ 이래 논란의 대상이었다. 재판소가 잠정조치를 단지 제시(indicate, suggest)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구속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다음의 LaGrand 사건에서 ICJ는 규정의 대상과 목적에 입각하여 해석할 때 잠정조치가 법적 구속력이 있음을 처음으로 명확히 하였다. 이후 ICJ는 잠정조치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잠정조치는 피소국에 의하여 준수되지 않았던 사례가 많았다. 잠정조치가 내려졌던 몇몇 재판에는 피소국이 출석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준수는 더욱 기대하기 어려웠다. ICJ는 잠정조치를 직접 강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의 현실적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한편 ICJ가 잠정조치를 내린 이후 사건의 본안 판결에서 이와 반대되는 결정을 내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며, 대부분의 사건에서 잠정조치의 내용이 본안판결에서도 지지를 받았다.

V. 반소

피소국은 동일한 재판에서 제소국을 상대로 본소와 직접 관련된 반소를 제기할 수 있다. 반소는 답변서를 통하여 서면으로 제기하여야 하며, 역시 ICJ의 관할권에 속하는 범위 내에서만 제기할 수 있다. 반소는 단순히 본소에 대한 방어 주장을 넘어 별도의 청구를 담고 있는 독립적인 법률행위이다.

“whereas a counter-claim is independent of the principal claim in so far as it constitutes a separate “claim”, that is to say an autonomous legal act the object of which is to submit a new claim to the Court, and, whereas at the same time, it is linked to the principal claim, in so far as, formulated as a “counter” claim, it…

반소는 본소의 청구와 직접 관련된 사안에 대한 주장이므로 신속한 재판 등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 인정되는 절차이다. 직접 관련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하여는 규칙에 별다른 설명이 없으나, ICJ는 반소가 본소와 동일한 성격의 사안에 기반하여야 하고, 법률상 관련성을 가진 내용이어야 한다고 해석한다. 반소에 대한 재판 적격성이 인정되면 ICJ는 반소를 본 안과 병합하여 심리하고, 본소와 반소의 청구에 대하여 하나의 판결문으로 답한다.

VI. 소송참가

ICJ에서 진행중인 사건의 결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제3국은 소송참가(intervention)를 할 수 있다. 소송참가에는 사건의 결정에 의하여 영향받는 법률적 이해관계(interest of legal nature)가 있는 국가가 신청하는 경우(제62조)와 다자조약의 해석이 문제가 되는 경우 조약의 다른 당사국이 참가하는 경우가 있다(제63조). 전자는 재판소의 허가결정이 있어야 참가할 수 있으나, 후자의 경우 신청국이 권리로서 참가할 수 있다.

제62조 1. 사건의 결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법률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인정하는 국가는 재판소에 그 소송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도록 요청할 수 있다. 2. 재판소는 이 요청에 대하여 결정한다.

제63조 1. 사건에 관련된 국가 이외의 다른 국가가 당사국으로 있는 협약의 해석이 문제된 경우에는 재판소 서기는 즉시 그러한 모든 국가에게 통고한다.

그렇게 통고를 받은 모든 국가는 그 소송절차에 참가할 권리를 가진다. 다만 이 권리를 행사한 경우에는 판결에 의하여 부여된 해석은 그 국가에 대하여도 동일한 구속력을 가진다. 소송참가는 구두변론 시작 이전에 서면으로 신청하여야 함이 원칙이다. ICJ 규정 제63조에 의한 소송참가는 그 요건과 효과가 비교적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에 적용에 관하여 논란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제62조에 의한 소송참가는 참가 요건도 추상적이고, 이의 허용 여부에 있어서 재판소가 상당한 재량을 행사할 수 있다. 소송참가의 필요성은 신청국이 입증하여야 한다. “영향을 받을 수 있는(may be affected)” 이해관계가 있음을 제시하면 되며, “반드시 영향을 받게 될 것”을 입증할 필요는 없다. ICJ는 모든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결론을 내린다. ICJ는 전통적으로 제62조에 의한 소송참가를 허용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당사국의 동의에 기하여만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ICJ로서는 소송참가의 확대가 제소 자체를 위축시킬 것을 우려하지 않 을 수 없기 때문이다.

PCIJ 이래 ICJ가 최초로 제62조에 의한 소송참가를 허용한 사건은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의 국경분쟁 사건이었다. 당시 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니카라과가 법률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보아 참가를 허용하였다. 이 판결을 통하여 ICJ는 그동안 소송참 가에 관하여 의문스러웠던 몇 가지 법적 쟁점에 대한 답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첫째, 기존의 분쟁 당사국과 소송참가국 간에도 ICJ의 관할권의 성립근거가 있어야 하느냐는 PCIJ 이래의 논란에 대하여 ICJ는 관할권 성립근거는 필요 없다고 답하였다.40) 즉 ICJ는 소송참가를 수락할 재판소의 권한은 당사국의 동의가 아닌 규정 제62조에 근거하므로 따라서 분쟁 당사국이 반대하거나 사건 당사국과 소송참가국 사이에 재판관할권이 성립하지 않아도 소송참가를 허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paras. 100-101).

둘째, 소송참가국의 지위에 관하여는 참가국이 사건 당사국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당사국으로서의 권리·의무를 갖지 못하며 (non-Party intervener), 판결도 참가국에 대하여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다 (paras. 102).

VII. 판결

제기된 사건에서 분쟁 당사국이 화해를 하거나 다른 이유에서 재판신청을 철회하지 않는 한, 재판소는 다수결로 판결을 내리게 된다. 가부 동수일 경우 재판장이 결정투표권(casting vote)을 행사한다. 합의에 필요한 최소 의사정족수는 9명이다. 다수의견과 다른 견해를 가진 판사는 반대의견(dissenting opinion)이나 개별의견(separate opinion)을 발표할 수 있다. 판결은 종국적이며, 상소할 수 없다. 판결의 효력은 해당 사건의 당사국에게만 미치고, 선례 구속력은 인정되지 않는다(제59조).

판결의 내용은 소송 당사국이 무엇을 요구하였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제소국은 상대국의 국제법 위반행위에 따른 피해와 관련하여 사태의 원상회복을 요구하거나 피해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원상회복만으로 피해의 전보가 되지 않을 경우 양자를 동시에 요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제소국은 상대국이 국제법을 위반하였다고 선언하는 판결을 요청할 수도 있다. 과거의 행동에 대한 위법선언뿐 아니라, 미래의 행동에 대하여도 위법의 선언을 요청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 당사국은 일정한 국제법적 문제에 대한 해석이나 답변의 제시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피소국이 어떠한 국제법적 의무를 부담하는가를 확인하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한다.

UN 회원국은 ICJ의 판결을 이행할 의무를 지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일방 당사국은 이를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여 조치를 기대할 수 있다(UN헌장 제94조). 아직까지 안보리가 ICJ 판결의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결의를 채택한 사례는 없다.

니카라과 v. 미국 판결(1982)의 이행을 촉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에 대하여 미국은 2차례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과거에는 패소국이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였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이행이 잘 되는 편이다.

판결의 의미나 범위에 관하여 분쟁이 있는 경우 당사국은 재판소에 해석을 요청할 수 있다(제60조). 해석 요청은 판결의 주문(文)에 관련되어야 하며, 판결의 이유에 관한 것이어서는 아니된다. 또한 해석의 요청이 판결의 종국성을 해치거나, 판결의 이행을 지연시키지 말아야 한다.

판결을 선고할 당시 당사국이 알지 못하였던 결정적 사실이 뒤늦게 발견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단 결정적 사실을 알지 못한 데 과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재심 청구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일로부터 늦어도 6개월 내에 이루어져야 하며, 판결일로부터 10년이 경과한 이후에는 어떠한 사유로도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제6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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